대흥사 트레킹

김평진 기자 / 2021-11-23 23:05:48


대흥사 해탈문. 대흥사 해탈문에는 문 앞에 ‘두륜산대흥사(頭輪山大興寺)’라는 현판과 전각 안에 ‘해탈문(解脫門)’이라는 현판이 따로 있다. ‘해탈문(解脫門)’ 현판은 ‘동국진체’로 유명한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며, 해탈문에 걸려 있는 '두륜산대흥사(頭輪山大興寺)' 현판은 조선 말기에 활동한 해사 김성근의 글씨이다. 대흥사 해탈문 안에는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동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동자가 봉안되어 있다.
대흥사 해탈문. 대흥사 해탈문에는 문 앞에 ‘두륜산대흥사(頭輪山大興寺)’라는 현판과 전각 안에 ‘해탈문(解脫門)’이라는 현판이 따로 있다. ‘해탈문(解脫門)’ 현판은 ‘동국진체’로 유명한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며, 해탈문에 걸려 있는 '두륜산대흥사(頭輪山大興寺)' 현판은 조선 말기에 활동한 해사 김성근의 글씨이다. 대흥사 해탈문 안에는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동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동자가 봉안되어 있다.


[뉴스서울] 전남 해남군 삼산면에 위치한 '대흥사(大興寺)'는 조계종 22교구 본사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山地僧院)'을 구성하는 7개 산사 중 한 곳이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7개 산사는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그리고 '해남 대흥사' 이다.



대흥사 일주문. 대흥사 주차장에서 유선관(유선여관)을 지나 대흥사 경내로 진입하는 입구에 대흥사 일주문이 있다. 옛날에는 두륜산을 대둔산으로 불렀기 때문에 ‘대둔사’라고 했는데 근대에 대흥사(大興寺)로 명칭을 바꾸었다. 대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이다.
대흥사 일주문. 대흥사 주차장에서 유선관(유선여관)을 지나 대흥사 경내로 진입하는 입구에 대흥사 일주문이 있다. 옛날에는 두륜산을 대둔산으로 불렀기 때문에 ‘대둔사’라고 했는데 근대에 대흥사(大興寺)로 명칭을 바꾸었다. 대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이다.


대흥사(大興寺)는 풍담의심스님으로부터 초의의순스님에 이르기까지 13분의 대종사가 배출되었으며, 만화스님으로부터 범해스님에 이르기까지 13분의 대강사가 배출된 유서깊고 전통있는 명찰이다. 특히 초의대종사로 인하여 대흥사(大興寺)는 우리나라 차(茶) 문화의 성지로 유명해졌다.


대흥사(大興寺) 경내는 크게 북원(北院), 남원(南院), 별원(別院)의 3개 영역으로 나뉠 수 있다. 대웅전 경내를 가로지르는 금당천(金塘川) 냇물을 중심으로 남쪽 구역과 북쪽 구역으로 나뉜다. '북원' 구역에는 대응보전과 응진당, 삼층석탑 등이 있고, '남원' 구역에는 천불전, 용화당 등이 있다. '별원' 구역에는 표충사(表忠祠)와 대광명전, 성보박물관 등이 있다.



대흥사 부도전. ‘부도’는 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것이다. 부도전에는 이와 같은 ‘부도’ 뿐만 아니라 비문을 돌에 새겨 부도 근처에 세우는 ‘탑비’도 함께 건립되어 있다. 대흥사 부도전에는 서산대사를 비롯하여 대흥사 역대 종사와 강사들의 부도와 탑비가 봉안되어 있다.
대흥사 부도전. ‘부도’는 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것이다. 부도전에는 이와 같은 ‘부도’ 뿐만 아니라 비문을 돌에 새겨 부도 근처에 세우는 ‘탑비’도 함께 건립되어 있다. 대흥사 부도전에는 서산대사를 비롯하여 대흥사 역대 종사와 강사들의 부도와 탑비가 봉안되어 있다.


'남원' 구역의 중심은 '천불전(千佛殿)'인데 다포식 팔작지붕 형태의 목조건물이다.


'별원' 구역에는 서산대사와 그 제자인 사명대사, 처영대사를 모시는 사당으로 정조(正祖)의 사액을 받은 "표충사(表忠祠)"가 있으며 지금은 동국선원(東國禪院)으로 쓰고 있는 ‘대광명전’도 별원 구역에 있다.


대흥사(大興寺)에는 유명한 서예가들이 쓴 현판이 많이 있다.



대흥사 천불전. 천불전(千佛殿)은 대흥사 남원 구역의 중심 전각이다. 천불전은 조선후기 순조 때 건축된 다포계의 팔작지붕 형태의 목조 건물이다. 천불전(千佛殿) 편액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다. 천불전의 천불은 경주 불석산의 옥돌로 조성한 것으로 1817년 배로 싣고 오던 도중 부산 앞바다에서 태풍을 만나 일본 큐슈로 표류해 갔다가 다음 해인 1819년에야 대흥사로 돌아와 봉안된 것이다. 
대흥사 천불전. 천불전(千佛殿)은 대흥사 남원 구역의 중심 전각이다. 천불전은 조선후기 순조 때 건축된 다포계의 팔작지붕 형태의 목조 건물이다. 천불전(千佛殿) 편액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다. 천불전의 천불은 경주 불석산의 옥돌로 조성한 것으로 1817년 배로 싣고 오던 도중 부산 앞바다에서 태풍을 만나 일본 큐슈로 표류해 갔다가 다음 해인 1819년에야 대흥사로 돌아와 봉안된 것이다.


먼저,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은 조선 3대 명필 중 한분인 '원교 이광사'가 쓴 글씨이다. 또한 '천불전(千佛殿)' 현판과 '침계루(枕溪樓)' 현판, ‘해탈문(解脫門)’ 현판도 모두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다. 원교 이광사의 글씨는 ‘원교체’ 또는 ‘동국진체’라고 하는데 기교가 있고 필체가 힘있는 듯 없는 듯 굵고 강한 느낌이 드는 서체이다.


그리고 대웅보전 옆 백설당 지붕 밑 '무량수각(無量壽閣)'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다. 또한 '표충사(表忠祠)'의 현판은 정조(正祖)의 어필이다. 1788년 정조대왕이 직접 써서 하사하였는데 선이 굵고 힘이 당찬 느낌의 서체이다.



대흥사 표충사. 대흥사 표충사(表忠祠)는 서산대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당으로 표충사(表忠祠) 편액은 1788년 정조대왕이 직접 써서 하사한 것이다. 표충사에는 서산대사 휴정스님, 사명대사 유정스님, 뇌묵당 처영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대흥사 표충사. 대흥사 표충사(表忠祠)는 서산대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당으로 표충사(表忠祠) 편액은 1788년 정조대왕이 직접 써서 하사한 것이다. 표충사에는 서산대사 휴정스님, 사명대사 유정스님, 뇌묵당 처영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그 외에도 '백설당(白雪堂)' 현판과 해탈문에 걸려 있는 '두륜산 대흥사(頭輪山大興寺)' 현판, '응진당(應眞堂)' 현판은 조선 말기에 활동한 해사 김성근의 글씨이다. 해사 김성근은 구한말 의정부참정과 탁지부대신을 지냈는데 서재필 박사의 외숙부이기도 한 당대 명필이었다.


또한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채인 '용화당(龍華堂)' 현판은 성당 김돈희 글씨이다. 김돈희의 글씨는 정돈되고 깔끔한 서체이다.



용화당 현판.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채인 '용화당(龍華堂)' 현판은 성당 김돈희 글씨이다. 김돈희의 글씨는 정돈되고 깔끔한 서체로 유명하다.
용화당 현판.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채인 '용화당(龍華堂)' 현판은 성당 김돈희 글씨이다. 김돈희의 글씨는 정돈되고 깔끔한 서체로 유명하다.


대흥사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과 관련해서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귀양가기 전에 친분이 두터웠던 초의스님을 만나기 위해 초의스님이 주지로 있던 대흥사에 들렸는데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을 보고 수준이 낮다고 하여 자신이 쓴 '무량수각(無量壽閣)' 현판을 달게 하였다.



대웅보전 현판. 대흥사 대웅보전(大雄寶殿)의 현판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다. 추사 김정희가 초의스님이 대흥사 주지로 있던 시절 대흥사를 방문하여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을 수준이 낮다고 내리게 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8년여의 제주도 유배생활을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가던 도중 추사 김정희는 다시 대흥사에 들렸는데 과거에 자기가 내리게 했던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을 다시 걸게 하였다고 한다.
대웅보전 현판. 대흥사 대웅보전(大雄寶殿)의 현판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다. 추사 김정희가 초의스님이 대흥사 주지로 있던 시절 대흥사를 방문하여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을 수준이 낮다고 내리게 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8년여의 제주도 유배생활을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가던 도중 추사 김정희는 다시 대흥사에 들렸는데 과거에 자기가 내리게 했던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을 다시 걸게 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에서 8년여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대흥사에 들렸는데 이때는 제주도 유배생활 중 서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 후라서 본인이 과거에 원교 이광사의 글씨를 이해하지 못하고 교만하였던 행동을 뉘우치고 본인이 쓴 현판을 내리고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을 다시 걸게 하였다고 한다.



무량수각 현판. 대흥사 대웅보전 옆 전각이 ‘백설당’인데 백설당 전각에는 ‘백설당(白雪堂)’ 현판과 함께 백설당 지붕 밑에 '무량수각(無量壽閣)'이라는 현판이 있다. '백설당(白雪堂)' 현판은 조선 말기에 활동한 해사 김성근의 글씨이며, '무량수각(無量壽閣)'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다.
무량수각 현판. 대흥사 대웅보전 옆 전각이 ‘백설당’인데 백설당 전각에는 ‘백설당(白雪堂)’ 현판과 함께 백설당 지붕 밑에 '무량수각(無量壽閣)'이라는 현판이 있다. '백설당(白雪堂)' 현판은 조선 말기에 활동한 해사 김성근의 글씨이며, '무량수각(無量壽閣)'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다.


대흥사에는 또한 오래된 느티나무 보호수가 있는데 2개 나무의 뿌리가 연결된 '연리근(連理根)'이다. 연리근(連理根)은 뿌리가 붙어 있어 불리는 이름인데, 가지가 붙어 있으면 연리지(連理枝), 줄기가 겹치면 연리목(連理木)이라고 한다. 이렇게 두 몸이 하나된다는 뜻으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연인의 사랑에 비유된다.


남쪽 고즈넉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대흥사(大興寺)'는 번잡스러운 일상을 떠나 참된 나를 찾을 수 있는 최선의 장소이다. 대흥사 산사를 느린 걸음으로 걷는 트레킹이야말로 내안에 숨겨진 나 자신을 찾는 마음수련의 트레킹이라 할 것이다.



연리근. 대흥사에는 또한 오래된 느티나무 보호수가 있는데 2개 나무의 뿌리가 연결된 '연리근(連理根)'이다. 연리근(連理根)은 뿌리가 붙어 있어 불리는 이름인데, 이렇게 두 몸이 하나된다는 뜻으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연인의 사랑에 비유된다. 
연리근. 대흥사에는 또한 오래된 느티나무 보호수가 있는데 2개 나무의 뿌리가 연결된 '연리근(連理根)'이다. 연리근(連理根)은 뿌리가 붙어 있어 불리는 이름인데, 이렇게 두 몸이 하나된다는 뜻으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연인의 사랑에 비유된다.


대흥사 응진전 앞 삼층석탑. 대흥사 응진전 앞에는 전형적인 신라석탑 양식에 따라 매우 단정하고 세밀하게 조성된 삼층석탑이 있다. 이 삼층석탑은 북미륵암 삼층석탑과 함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대흥사 응진전 앞 삼층석탑. 대흥사 응진전 앞에는 전형적인 신라석탑 양식에 따라 매우 단정하고 세밀하게 조성된 삼층석탑이 있다. 이 삼층석탑은 북미륵암 삼층석탑과 함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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