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사 트레킹
김평진 기자
webmaster@newsseoul.co.kr | 2021-12-10 09:41:31
[뉴스서울] 금산사(金山寺)는 전북 김제시 금산면 모악산(母岳山) 서남쪽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이다. 금산사(金山寺)는 백제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사찰로 1,400여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유서깊은 사찰이다.
금산사(金山寺) 입구에는 금산사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석성이 있었는데 지금은 성벽은 사라지고 성문만 남아 있다. 성문에는 개화문(開化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견훤성문’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개화문(開化門)을 지나 금산사에 오르는 산길에서 처음 만나는 것은 ‘모악산 금산사(母岳山金山寺)’라고 쓰여 있는 현판이 걸려 있는 ‘일주문’인데, 이 ‘모악산 금산사(母岳山金山寺)’ 현판은 유명한 서예가인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의 글씨이다.
‘일주문(一柱門)’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며,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로부터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세계로 향하게 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일주문을 지나 금산사 경내로 들어가는 길 일직선상에 2개의 문(門)이 더 있는데, 바로 ‘금강문(金剛門)’과 ‘천왕문(天王門)’이다. 일주문을 지나 100m 정도 오르면 작은 개울 건너 ‘금강문(金剛門)’이 자리 잡고 있다. 금산사 금강문(金剛門) 전각 안에는 밀적금강, 나라연금강의 두 금강역사와 사자를 탄 문수동자와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상이 자리 잡고 있다.
금강문(金剛門) 뒤에 천왕문(天王門)이 있는데, 천왕문(天王門) 전각 안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모셔져 있다. 천왕문(天王門)은 현재의 금강문(金剛門)과 함께 1994년 건축되었는데 ‘천왕문(天王門)’ 현판 글씨는 고창 선운사 천왕문에 걸린 원교 이광사의 현판 글씨를 모각한 것이다.
천왕문(天王門) 안에는 대적광전 방향으로 오른쪽 앞부분에 비파를 들고 있는 동방(東方) 지국천왕(持國天王)이 있고, 그 옆 오른쪽 뒷부분에 칼을 들고 있는 남방(南方) 증장천왕(增長天王)이 있다. 또한 왼쪽 뒷부분에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는 서방(西方) 광목천왕(廣目天王)이 있고 그 옆 왼쪽 앞부분에 보탑과 당(幢)을 들고 있는 북방(北方) 다문천왕(多聞天王)이 있다.
이러한 사천왕(四天王)은 불교의 호법신으로, 사찰 입구 쪽에 거대신상으로서의 사천왕(四天王)이 조성되어 있는 것은 한국 불교에 특이한 것으로 조선시대 중기 이후 호국불교의 영향이라고 한다.
그리고 금강문에서 동북쪽으로 약 50m 떨어진 곳에 2개의 돌기둥이 나란히 서 있는데 바로 ‘당간지주’이다. 당간지주(幢竿支柱)는 대형 불화를 설치하는 법회나 신성한 깃발을 거는데 사용했던 돌기둥이다. 금산사 당간지주는 8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 중 가장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천왕문을 지나 북쪽 방향으로 진행하다보면 금산사 가람의 중심인 대적광전 앞마당으로 진입하게 되는데 ‘보제루(普濟樓)’의 누하(樓下) 진입(進入)을 통해 앞마당에 접어들게 된다.
금산사(金山寺) 전각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누가 뭐래도 ‘미륵전’이다. 그러나 사실 금산사의 본전(本殿)은 미륵전이 아니라 ‘대적광전(大寂光殿)’이다. 금산사는 화엄종의 맥을 계승하는 사찰인데, 화엄경의 주불은 ‘비로자나불’이며, 금산사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노사나불, 약사불 등 6개의 불상이 조성되어 있다.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을 큰 고요함(大寂)과 지혜의 빛(光)을 지닌 부처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화엄경의 설명에서 기인하여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삼는 전각이 ‘대적광전(大寂光殿)’인 것이다. 금산사 대적광전은 1968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나 안타깝게도 1986년 화재로 전소되었고 1990년에 현재의 건물로 복원되었다.
대적광전(大寂光殿) 현판은 악필법으로 유명한 석전 황욱의 글씨이며, 황욱의 글씨는 구례 화엄사 일주문 현판에도 남아 있다.
대적광전 옆에 유명한 ‘금산사 미륵전(彌勒殿)’이 있다. 정유재란 때 불타 전소된 것을 조선 중기 인조 때 다시 재건하였는데 외관은 3층이나 내부는 단층으로 되어 있는 팔작지붕건물로 다층의 사찰건축으로는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한국 건축사의 으뜸으로 꼽히며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각 층마다 서로 다른 현판이 걸려 있는데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용화지회(龍華之會)’는 근대 명필 성당 김돈희의 글씨이고 그 아래층의 현판인 ‘대자보전(大慈寶殿)’은 김돈희의 제자이며 정읍 출신의 천재 여성서예가 몽연 김진민의 글씨이다.
금산사는 후백제의 견훤이 크게 다시 지었는데, 견훤은 후일 큰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 미륵전에 감금되었다가 탈출하여 왕건에게 투항하였다고 한다.
또한 금산사 미륵전 북쪽 대적광전 옆에 적멸보궁(寂滅寶宮)과 방등계단(方等戒壇)이 조성되어 있다. 금강계단(金剛戒壇)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수계의식을 행하는 곳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자장율사가 양산 통도사에 최초로 금강계단(金剛戒壇)을 만들었다.
금강계단 전면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는 전각이 일반적으로 있는데 이 적멸보궁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금강계단에 부처님을 상징하는 부처님 사리가 봉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금산사의 경우 이러한 금강계단을 ‘방등계단(方等戒壇)’이라 부르는데 ‘방등(方等)’은 위,아래 사방으로 평등하다는 뜻이다. 금산사 방등계단(方等戒壇)은 매우 넓은 기단 위에 사각형의 돌이 놓이고 그 위에 석종형의 탑이 세워져 있으며,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방등계단 앞에는 오층석탑이 있는데 이 오층석탑은 고려시대인 10세기 후기에 조성된 것이며 이 또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러한 전각에서 벗어나 모악산 정상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부도전에 이르게 되는데 부도전에는 보물로 지정된 ‘혜덕왕사 탑비’가 있다. 혜덕왕사 소현은 고려시대인 11세기에 금산사를 중창한 고승이며, 혜덕왕사 탑비는 고려시대인 12세기 초에 조성된 것이다.
모악산(母岳山) 금산사(金山寺)는 백제시대에 창건되었고,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에 의해 미륵대도량으로 면모를 갖추었으며, 후백제시대 견훤의 발자취와 한(恨)이 금산사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의 제자로 호남의 의승군을 이끈 뇌묵 처영대사가 이곳 금산사를 본거지로 활동하였고 왜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금산사의 대부분 전각을 불태웠다.
나중에 조선시대 인조 때 많은 전각들에 대한 복원이 시작되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불교계 개혁의 중심이자 민주화운동 등 사회참여에도 적극적이었던 조계종 전(前) 총무원장 월주스님의 향기가 금산사에 아직도 남아 있다. 월주스님은 올해 7월 22일 입적하셨다.
이처럼 김제 금산사(金山寺)는 고대와 중세, 근현대를 잇는 한국 불교의 중심사찰 중 하나로 모악산 산행과 연계하여 금산사(金山寺)를 트레킹 하다보면 옛날의 나와 지금의 나, 미래의 나의 정체성을 함께 찾으면서 번뇌와 해탈의 윤회를 끊으려는 심리적 갈등이 혼재한 몸과 마음수련을 함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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